정착이야기 / 북한이탈주민, 우리 이웃들의 이야기 / 남북하나재단
(글ㆍ사진, 박선희 기자)

“사람들은 보통 식당에서 일하면 힘든 일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굳이 식당 일이 아니더라도 세상에는 쉬운 일은 없다고 봐요. 어떤 일이든 마지못해서 한다는 생각보다 즐긴다는 슬롯사이트 소닉 메이저가짐으로 일하면 힘든 일도 힘들지 않게 느껴집니다.”
서울에서 두 시간 남짓 달리다 슬롯사이트 소닉 메이저IC를 벗어나면 학곡사거리 부근에 넓은 주차장이 보이는 막국수 닭갈비 식당이 눈에 들어온다. 숯불 닭갈비, 철판 닭갈비, 막국수가 일품인 이곳은 슬롯사이트 소닉 메이저에서 유명한 맛집이다. 안으로 들어가면 숯불 닭갈비를 맛볼 수 있는 식당이 있고, 바로 왼쪽에는 철판 닭갈비 식당이 자리하고 있다.
식당에 들어서면 까만 앞치마를 두른 식당 슬롯사이트 소닉 메이저이 반갑게 맞아준다. 익숙한 솜씨로 밑반찬을 차리고 메뉴를 주방에 전달한다. 음식이 나오는 동안 다른 식탁의 수저통도 준비해놓고 비뚤게 놓인 의자도 정리한다. 경험이 많은 슬롯사이트 소닉 메이저의 노련한 손놀림과 빠른 발걸음은 예사롭지 않은 맛집 식당의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손님들을 맞이하느라 분주했던 분위기는 점심시간이 지나서야 조금 여유로워졌다.
10년 이상의 경력을 가진 슬롯사이트 소닉 메이저으로 보일 정도로 능숙하게 일처리를 하는 양유경 씨가 이곳에서 일하기 시작한 것은 불과 2년 전이다. 어떤 사연으로 이곳에서 일하게 된 건지 궁금했다.
2010년 남한에 입국한 그는 울산에 삶의 둥지를 틀었다. 정부가 제공해준 국민임대아파트에서 먹고 자는 문제는 해결됐지만 취업이라는 높은 산을 넘어야 했다. 고민 끝에 거주지 인근에 있는 간호조무사 학원에 다녔다. 자격증 취득 후 병원에 취직할 계획으로 열심히 공부하던 와중에 생각지 못한 불행이 찾아왔다.
정착 초기 가끔 복부 통증을 느꼈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을 하고 간단히 약만 먹고 넘겼다. 어느 날, 극심한 통증으로 급기야 119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위에 세 군데나 구멍이 나고 염증도 생겨 수술을 받아야 했다. 자격증 공부를 포기하고 위 수술을 받았고 5개월 후에는 자궁근종 수술까지 받게 되었다.
반려견을 통해 시작한 애견사업, 그리고 시련
“남들은 정착 초기 자격증을 취득하고 일자리를 찾느라 바쁜데 건강 때문에 한동안 집 안에만 있으니 우울증까지 찾아와 삶의 의욕이 사라졌어요. 이렇게 살다가는 안 되겠다 싶어 강아지를 입양했어요. 재롱부리는 강아지 덕분에 외로움도 줄고 건강도 회복되면서 이듬해 경기도 양주로 이사를 했어요.”
공기 좋은 시골에서 강아지를 키우고 싶어 이사를 온 것이다. 그는 강아지를 키우면서 애견용품과 애견미용에 관심이 생겼고 인근 애견숍에서 2년 가까이 일했다. 애견용품 판매와 애견미용을 배웠고 사업 운영방식도 터득하여 양주에 작은 애견숍을 차렸다.
도매업체로부터 애견용품과 사료를 공급받았다. “처음에는 두려움이 있었는데,생각보다 힘들지 않았어요.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서서히 지쳐가는 제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애견숍은 애견용품만 팔아서는 운영이 힘들고 애견미용을 함께 해야 그나마 유지할 수 있다. 인건비가 부담되어 슬롯사이트 소닉 메이저을 두지 않고 혼자 사업장을 운영했다. 애견미용은 다양한 종류의 애견들을 다루어야 하며, 가끔 예상하지 못한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하루는 미용 중간에 강아지가 갑자기 몸을 움직이는 바람에 뾰족한 가위날에 찔렸어요. 피가 흘러나와 많이 놀라고 당황했어요. 근처에 동물병원도 없어 치료를 받으러 슬롯사이트 소닉 메이저까지 가야 했어요. 다행히 늦지 않게 도착해 치료받고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지만 그후로는 가위를 들기가 무서웠고 심적으로 힘들었어요."

친절은 고객을 춤추게 한다
하나부터 열까지 혼자서 감당해야 하는 심리적, 육체적 부담감은 점차 늘어났고, 다시 건강에 적신호가 왔다. 하는 수 없이 애견숍을 정리하고 한동안 건강관리에 집중했다. 그후 지인의 추천으로 강원도 춘천으로 이사를 했고 식당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슬롯사이트 소닉 메이저이 아닌 아르바이트로 일했던 이유는 건강에 무리가 가지 않을 정도로 일하고 싶어서였다.
일을 해보니 즐거웠고 직접 음식을 만들어 팔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식당에서 반 년 정도 일하다 슬롯사이트 소닉 메이저 외곽에 ‘육림 닭발’ 체인점을 차렸다. 처음에는 손님들이 북적거리지는 않았지만 인근에 사는 탈북민도 자주 와주었고, 한 번 다녀간 손님은 음식이 맛있다며 단골손님이 되어 주었다.
그렇게 4년을 잘 운영해왔으나 갑자기 들이닥친 코로나19로 손님의 발길이 거짓말처럼 뚝 끊겼다. 조금만 기다리면 나아지겠지 하는 생각으로 버텼지만 코로나19가 장기화하면서 상황은 점점 힘들어졌다. 고민 끝에 식당을 포기했다.
“이번 경험을 통해 사업은 나만 잘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뼈저리게 알게 되었죠. 생각지도 못한 변수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경험을 했어요. 안 되는 걸 계속 붙들고 있으면 결국 손해만 불어나기 마련이죠.”
두 번이나 사업을 포기한 그는 현재 ‘춘천막국수닭갈비’ 식당에서 3년째 슬롯사이트 소닉 메이저으로 일하고 있다. 고속도로 분기점에 위치한 식당이라 점심시간이면 인근에 사는 주민들과 장거리 버스 운전기사들, 여행 중에 들른 손님들로 손이 열 개라도 모자랄 정도로 바쁘다.
사장으로 일하던 그가 슬롯사이트 소닉 메이저으로 일하면서 남모를 고충은 없을까? 그러나 유경 씨는 이곳에서 일하는 것이 마냥 행복하고 즐겁다고 했다. 손님이 주문하면 몸을 낮춰 공손하게 귀담아 듣고, 빠짐없이 음식을 갖다 드리고, 반찬 그릇이 비면 “더 갖다 드릴까요?”라고 친절하게 물어본다.
아무리 바빠도 손님들에게 더 필요한 것은 없는지 꼼꼼히 살펴본다. 그의 친절한 서비스가 기억에 남는다며 식당을 다시 찾는 고객이 늘어날 때마다 사장 부부의 믿음은 커가고 동료 슬롯사이트 소닉 메이저들도 그의 친절한 모습을 배워야겠다고 하는 눈치다.
인생은 파도타기
그는 이곳에서 함께 일하던 슬롯사이트 소닉 메이저과 결혼했다. 출퇴근도 매일 같이 하고, 손님들이 몰리는 시간이면 서로 도와주며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다. 신혼생활은 서로에게 활력소가 되어 일하는 것이 더 즐거웠고 행복했다.
양 씨의 고향은 함경북도 회령이다.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갓 스무 살이 되던 2004년 탈북해 중국에서 6년을 살다가 2010년 남한에 입국했다.
“북한에 살 때는 선택이라는 단어를 몰랐어요. 남한은 직업도 선택할 자유가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슬롯사이트 소닉 메이저먹기에 달린 것 같아요. 정착 세월이 늘면서 점점 주변을 바라보게 되더라고요. 폐지를 힘들게 모아 번 돈을 아낌없이 기부하는 분들을 보며 어떤 환경에서든 즐겁고 행복하게 살고, 보람 있는 일을 하며 사는 것이 성공한 삶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는 식당에서 4대 보험은 물론 연차를 비롯한 다양한 복지혜택을 받고 있다고 했다. “예전에는 식당에서 일한다면 아르바이트나 시간제라는 인식이 강했지만 지금은 달라졌어요. 춘천은 공장보다 식당이 많고, 슬롯사이트 소닉 메이저들에 대한 복지가 잘 되어 있습니다. 사업을 할 때는 임대료부터 시작해 운영관리까지 신경 써야 할 일들이 많았어요. 지금은 맘 편히 맡겨진 일을 즐겁게 하고 있어요. 고된 일이 즐겁게 일하는 마음을 이기기는 어렵거든요.”
젊음과 꿈을 간직한 30대 초반인 그는 지금처럼 쭉 살아도 슬롯사이트 소닉 메이저하고, 기회가 되면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금은 그 모든 것들을 위해 준비하는 과정이라며 미소 짓는 모습이 아름다웠다.@